트리뷰트밴드의 욕망

스타급 뮤지션들의 내한 공연이 붐을 넘어 보편화가 된 가운데, 이색적인 공연이 눈에 띈다. 오는 3월 5일부터 8일까지 열리는 아바 걸스와 이매진 더 비틀즈 밴드의 내한이다. 처음 오는 그들이지만 이름은 친숙하다. 아바와 비틀즈라는 두 단어 때문이다. 이름에서 직감할 수 있듯, 이들은 트리뷰트 밴드다. 트리뷰트 밴드란 특정 밴드의 음악을 그대로 카피하는 건 물론이고, 이미지까지 그대로 재현하는 밴드를 말한다. 보컬의 음색이나 연주의 톤, 심지어 사용하는 장비까지 같다. 자신들이 존경하는 밴드에 대한 경외심을 그들을 100% 모방함으로써 표출한다. 말하자면 오리지널 밴드의 '클론'이 되기위해 절치부심하는 것, 그것이 트리뷰트 밴드의 최대 목표다. 그러니 트리뷰트 밴드의 세계에서 밴드의 가치는 오리지널리티에 있지 않다. 얼마나 그 밴드와 닮았느냐를 넘어 얼마나 그 밴드와 똑같느냐가 평가의 기준이 된다.

비틀즈와 아바는 워낙 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전설의 주인공이다. 그러니 트리뷰트 밴드도 많다. 비틀즈의 고향인 리버풀에서는 어디에서나 비틀즈 트리뷰트 밴드를 볼 수 있다. 라스베가스의 호텔에서는 유명 가수들의 공연 못지 않게 비틀즈에서 U2에 이르는 다양한 트리뷰트 밴드의 공연을 볼 수 있다. 해외의 티켓 판매 사이트에서는 아예 트리뷰트 밴드가 공연의 한 장르로 자리잡고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에도 2005년 역시 비틀즈 트리뷰트 밴드인 '팹 포'(Fab Four: 비틀즈의 활동 당시 별명이었다.)가 내한한 바 있다. 얼마전에는 한 성인나이트 클럽에서 비틀즈 트리뷰트 밴드를 불러 오면서 '비틀즈의 역사적 내한공연'이라는 웃지못할 홍보문구를 내걸어 인터넷에서 회자된적도 있다. 한국에도 트리뷰트 밴드는 있다. 이번 공연에 게스트로 참가하는 멘틀스, 레볼루션 등의 비틀즈 트리뷰트 밴드들이 활발히 활동 중이며, 퀸의 트리뷰트 밴드인 영부인(0vueen)은 그 작명 센스 때문에도 나름대로 널리 알려진 경우다. 이번에 내한하는 아바 걸스와 이매진 더 비틀즈 밴드는 그런 트리뷰트 밴드계에서도 각각 아바와 비틀즈와 가장 흡사한 팀으로 꼽힌다. 팬들 사이에서는 정상급 트리뷰트 밴드인 셈이다. 일반적인 뮤지션이나 밴드가 확고한 정체성을 가질 때 인정받는 것에 비하면 기준이 다르다.

세상의 모든 밴드는 카피에서 출발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노래를 합주하며 밴드의 기틀을 다진다. 합주가 계속되고 팀의 모양새가 잡히면 자작곡이 나온다. 자작곡과 카피곡을 적당히 섞어서 시작한 공연활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작곡 위주가 된다. 그 자작곡들을 녹음해서 음반사에 들고 가고 계약을 맺은 후 정식으로 데뷔한다. 밴드가 만들어져서 성장하는 과정이다. 자작곡을 만들어서 자신만의 음반을 가지고 대중과 만나는 게 밴드라는 음악 공동체의 최종 목표인 것이다. 반면 트리뷰트 밴드의 최종 목표는 자신들의 음반을 통해 스타덤에 오르는 게 아니다. 존경하는 뮤지션의 전성기적 공연을 동시대에 재현하는 거다. 각광받는 트리뷰트 밴드들은 대부분 해체하거나 사망한 팀들을 재현하는 경우가 많다.

비틀즈와 아바등 60년대와 70년대를 평정했던 뮤지션들의 음원은 지금도 계속 생산된다. 레코딩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모노에서 스테레오, 디지털 리마스터링과 5.1채널로 계속 새 옷을 갈아입고 보다 나은 음질로 시장에 등장한다. 하지만 재현할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공연이다. 훗날 그들을 뒤늦게 알게된 팬들은 에드설리번 쇼에서의 비틀즈 공연, 전 세계의 디스코 클럽을 평정했던 아바의 무대를 이야기로만 듣는다. 2차원 평면의 영상을 통해서만 접한다. 그 화려한 기록물을 보며 '그 때 그 시절'을 내 눈앞에서 만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동경을 품게된다. 트리뷰트 밴드들이 파고드는 지점은 바로 그 회고와 동경의 시장이다. 음반과 사진, 영상으로 남아있는 전설의 순간들을 그들은 3차원의 무대에서 실시간으로 재현한다. 그것도 존경하는 뮤지션의 최고 전성기를 말이다.

비틀즈 트리뷰트 밴드들은 대부분 초기 비틀즈의 의상과 머리 스타일을 하고 무대에 선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 무대에서 각 시기별로 무대 의상을 입고 나올 때도 있지만, 포스터나 사진에서 그들은 모드 스타일의 정장에 더벅머리로 등장한다. 아바 트리뷰트 밴드의 모습은 어김없이 바로 '댄싱 퀸'시절의 아바다. 비틀즈와 아바가 음악계에 대폭발을 일으키던 시점의 모습이다. 그들을 기억하는 모두가 딱 떠올리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음악은 그들의 히트곡을 두루 연주할지라도, 화양연화의 이미지를 재현함으로써 그들의 전설을 그리워하고 선망하는 팬들의 욕구를 최대한으로 충족시키는 거다. 이 재현을 통해서 그 전설을 실제 지켜봤던 세대는 자신이 젊었을 때로 돌아가고, 후일담으로만 알고 있는 세대는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러니 트리뷰트 밴드에게는 차이와 정체성이 아닌, 동일화가 최고의 미덕일 수 밖에 없다. 그들의 존재 이유란 새로운 것의 출현이 아니라 사라진 것의 재현에 있기 때문이다.


모 신문의 청탁을 받고 썼으나, 다른 신문에서 이 글과 똑같은 내용의 기사가 먼저 나오는 바람에 날아가버린 원고. 하아.

by 김작가 | 2008/03/05 02:25 | 생각 | 트랙백(1)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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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vassleen at 2009/04/18 08:45

제목 : 재미있는 일본의 메탈리카 트리뷰트 밴드들
유튜브에서 한국과 일본의 헤비메탈 대결이라는 비디오를 보다가 Metallicats라는 메탈리카 짝퉁 밴드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연주도 그저 그렇고 보컬이 너무 심한 억양으로 바떼리 바떼리라고 해서 이넘들 뭐야 하고 웃겼습니다. 일본의 메탈리카 "트리뷰트" 밴드 메탈리캣츠 이들은 진정 메탈리카를 사랑하는 트리뷰트 밴드다운 자세를 보여줍니다. 이유는 맴버들이 메탈리카 맴버의 이름을 따서 활동하고있기 때문입니다. 보컬은 TENMUSU HETFI......more

Commented by 유로스 at 2008/03/05 03:09
나가리의허무함이란...
Commented by Forever at 2008/03/05 09:15
아 허무..
Commented at 2008/03/05 11:5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김작가 at 2008/03/05 14:36
비공개/연습했다가 혹시 노래방 갈 일이 생기면 성대모사라도 해드리겠습니다-_-;;
Commented by espresso at 2008/03/08 00:25
다른 신문에 실린 이 내용의 기사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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