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이영훈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지난 2월 14일 아침, 눈을 떴다.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했다.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는 이영훈의 부고 기사가 떠 있었다. 택시를 탔다. '싱글벙글쇼'의 진행자인 강석과 이영훈은 오프닝에서 이영훈의 부고를 전하며 '시를 위한 시'를 틀었다. MBC로 갔다. 스튜디오 여기저기에서 이문세가 부른 이영훈의 노래가 흘렀다. DJ들마다 이영훈을 추모하는 멘트를 했다. 술을 마셨다. 1차와 2차, 연달아 이문세의 노래가 흘렀다. '사랑이 지나가면' '옛사랑' '깊은 밤을 날아서'. 카운터에 가서 신청곡 목록을 봤다. 어느 종이에나 이영훈의 노래가 적혀 있었다. 노래방에 갔다. 누구랄 것도 없이 이영훈의 곡을 불렀다. 화장실에 가며 다른 방을 지나쳤다. 두 개였던가, 아니면 세 개였던가. 그 정도의 방에서 우리와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2월 14일 이른 새벽, 명을 달리한 이영훈은 적어도 그 날 하루 어디에나 있었다. 택시안에, 방송국에, 술집에, 그리고 노래방에. 자신의 노래 중 가장 아꼈다는 이문세-이소라의 '슬픈 사랑의 노래' 가사처럼, 적어도 그의 노래를 들으며 청춘을 보냈던 사람들은 그 날 하루 이영훈의 노래를 안고 숨을 쉬었다. 세상에 이영훈의 노래밖에 없다는 듯이.

이영훈은 유재하와 더불어 1980년대 한국 팝 발라드를 완성한 작곡가다. 유재하가 앨범 한 장을 남기고 단명한 반면, 그는 이문세와 함께 여덟장의 앨범을 작업하며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 냈다. 아니, 그의 작품을 히트곡이란 상업적 단어로 명명하는 건 예의가 아닐 거다. 이문세에 의해 처음 불려졌지만 조성모, 이승철, 이은미, 서영은 등 수많은 후배들에게 리메이크되고 또 그 때 마다 대중의 사랑을 받은 명곡이 아닌가. 그러나 어떤 리메이크도 원곡을 능가하지는 못했다. 이영훈과 이문세가 사이가 틀어질만큼 싸우고 또 싸우며 작업했던 그 팽팽한 에너지를, 그 다툼을 흔적도 없이 뒤덮은 평온하고 아름답고 애잔하며 서정적이었던 음조를 재현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문세없이 이영훈없고 이영훈없이 이문세없다,라는 말은 그들의 노래가 리메이크될 수록 뼈저리게 다가왔다. 둘의 인연이 시작된 건 1984년이었다. 당시 이문세는 가수로서 두 장의 앨범을 발매했지만, 가수보다는 진행자와 DJ로 더 알려진 상태였다. 그 때 언더그라운드 음악계의 대부, 엄인호를 이문세가 찾아갔다. 엄인호는 곡을 달라는 이문세의 부탁에 자신의 밴드에서 키보드를 치고 있던 이영훈을 소개해줬다. 그가 만들었던 곡들 때문이었다. 그 노래 중에 '난 아직 모르잖아요'도 있었다.

낡은 기타 한대, 손 때 묻은 피아노가 전재산이었던 이문세와 이영훈은 서울 수유리 자취방에서 동거하며 곡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1985년 11월, 이문세의 3집이 발매됐다. '난 아직 모르잖아요' '소녀'같은 곡들이 거기 담겨 있었다. 이 앨범은 라디오를 중심으로 그야말로 파란을 몰고 왔다. 이문세는 DJ에서 가수로도 우뚝 설 수 있었다. 이영훈은 그의 콤비로서, 명 작곡가로서, 한국 대중음악에 없던 멜로디와 가사의 창작자로서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사랑이 지나가면' '그녀의 웃음 소리 뿐' 등이 담겨 있는 4집은 업계 추산으로 150만장 가까운 판매고를 올렸다. '시를 위한 시' '광화문 연가' '붉은 노을'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등을 수록한 5집은 당시 3500원 정도 하던 LP의 가격을 5천원으로 인상시키는 촉매제였다. 팬들은 1500원이나 오른 '판 값'에 불평하면서도, 너나없이 동네 레코드 가게로 달려가 이 앨범을 샀다. 이문세-이영훈 콤비의 황금기로 평가받는 이 시기를 통해 가요는 저급하고 팝은 고급스럽다는 인식은 조금씩 깨졌다. 역시 대부분의 선곡을 팝으로 채우던 라디오에서도 한국 대중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때 라디오에서는 프로그램마다 신청곡을 중심으로 자체 차트를 방송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시기 대부분의 차트, 특히 젊은 층이 즐겨듣늘 프로그램의 차트에서 1위는 늘 이문세의 차지였다. TV의 황제가 조용필이었다면, 라디오의 왕은 이문세였던 셈이다. 그리고 이게 가능했던 건 물론 이영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곡가로 데뷔하기 전, 이영훈은 연극과 미술 음악을 하면서 클래식적 감성을 쌓아왔다. 그런 배경에서 나온 감각은 대중음악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지속됐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의 전주와 후주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클래식에 대한 센스가 발라드로 이식되며 기존 발라드와는 차별화된 고급스러운 감성이 탄생했던 것이다. 그 이전의 발라드가 트로트적인 과장된 창법과 신파조의 멜로디로 이어져왔다면, 이영훈의 발라드는 팝 팬들의 취향까지 자극할 수 있는 세련된 애수의 노래였다. 그래서 이영훈은 한국 발라드의 모더니즘을 확립한 작곡가였다. 

이영훈을 얘기함에 있어서 가사를 빼놓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문세와 고은희가 함께 부른 '이별 이야기'에서 '그대 내게 말로는 못하고/ 탁자 위에 물로 쓰신 마지막 그 한 마디/ 서러워 이렇게 눈물만/그대여 이젠 안녕'처럼, 시적 압축과 구체적 상황 묘사가 살 아있는 그의 언어는 멜로디와 착 붙곤 했다. 특히, 사랑 노래에서 그런 감성은 빛나곤 했다. 대부분 지나간 사랑의 이야기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회상이다. 그가 남긴 사랑 노래의 대부분은 한 사람을 생각하며 만든 곡이라고 한다. 그가 유명세를 얻기 전, 20대 초반에 만났던 첫 사랑이다. 그래서 그의 부인은 이영훈의 노래를 들을 때 마다 속이 끓었다고 한다. 이영훈의 음악적, 가사적 미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옛사랑'같은 노래를 들어보라. 읇조리듯, 삼키듯 노래하는 이문세의 목소리가 타고 흐르는 그 간결하고도 극적인 멜로디와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내버려 두듯이' 같은 관조와 달관의 언어가 처연하게 어울리며 공허한 엔딩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는 이 노래는 그래서 이영훈이 떠나간 지금, 그의 정서를 압축적으로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이영훈의 시대를 관통해왔던 많은 사람들의 첫사랑같은 노래들이, 이제는 옛사랑이 됐다.

사실, 그는 좀 더 오래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두 번의 대장암 수술을 받았지만 식이요법과 약물 치료를 병행하면 재발 가능성이 높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그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된 건 결과적으로 그의 유작이 된, 지난 해 10월에 발매된 치과의사 가수 박소연의 음반을 작업하면서였다. 빡빡한 일정 탓에 한달동안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밤샘을 계속했고 줄담배를 피워댔다. 그리고 상태가 악화되어 3개월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은 후 다시는 병원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이영훈은 병원에 들어가기 직전, 함께 작업했던 스탭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요즘 몰골이 말이 아니긴 한데, 상태 좋아지면 꼭 사진을 찍어줘." 하지만 그가 남긴 마지막 사진은 이문세가 병실을 찾았을 때 한 일간지에서 찍은 사진이 됐다. 링거를 잔뜩 꽂은 상태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그 모습, 결국 눈물을 훌쩍거리던 그 모습은 하나의 시대가 사라져가는 풍경같았다. 김종필이 말했던가. 해는 지면서도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고. 그의 집에는 아직 발표되지 않은 노래가 50-60곡 쯤 잠자고 있다고 전해진다. 시놉시스까지 완성된 뮤지컬 '광화문 연가'에서 그 노래들을 들을 수 있을까. 설령 그럴 수 있다 해도 아쉬움이 사라지지는 않을 거다. 작품을 하나 맡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직접 관여해야 직성이 풀리던 이영훈의 완벽주의는 더 이상 여기에 없기에.


시사IN 원고

by 김작가 | 2008/02/21 17:48 | 스토리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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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lee at 2008/02/21 20:17
그와 동시대를 살진 못했지만 그의 감성을 고스란히 느낄수 있네요.
부디 행복한 곳으로 가시길...
Commented by 꿈의대화 at 2008/02/21 22:31
사실 그 세대가 아니기에, 자주 접한 음악은 아니었습니다. 조조할인 같은 곡이야
패닉으로 인해, 또 한창 중학생 때인가 들었던 지라 추억으로 남아 있는데...
(시인과 촌장, 어떤날, 들국화는 같은 세대가 아님에도 달고 살았는데;;)

작년에 베이스 하는 제 친구의 싸부님이 이문세 밴드의 세션이시거든요.
그 빽으로 서강대 메리홀에서 열린 동창회 공연을 다녀오고 나서 엄청난
재미와 감동을 느꼈었죠.

파랑새로 시작한 공연은- 이문세씨의 춤사위로 단지 신났을 뿐이고, 비디오와
함께 작업된 이별이야기에서 무대장치로 인해 신기하다는 생각이 앞섰을 뿐인데...

이 곡 가로수 그늘 아래를 들으면서
음악적 감동을 정말 진하게 느꼈었습니다. 특히 후렴으로 넘어가는 부분등
전체적인 화성 진행이 보통 발라드라고 느끼기 힘든 감동의 포인트라 생각해요...
Commented by 쭈우우운 at 2008/02/22 00:58
저도 너무 늦게 접했지만 그 대중성으로 인해 굉장히 저평가 된 노래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들어도 이렇게 좋은 노래들인데요.
Commented by Forever at 2008/02/22 20:11
분명히 전 이 세대는 아니지만..
제가 들어도 너무나 멋진 곡이기에..
아쉬움으로만 가득차있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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