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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의 부고를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
당연한 일일 것이다. 70년대 중반 태어나 80년대 중반 부터 이문세의 음악을 들었던 사람이라면 그럴 수 밖에 없다. 또한 아직까지도 끊임없이 리메이크되는 음악이라는 사실이 말해주듯 그로부터 20년가까이 지난 지금 쉽게 버금갈 수 없는 정서의 음악들을 만든 작곡가의 타계는 가까운 친지의 죽음에 못지 않은 거대한 비탄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자, 이런 이야기들은 집어치우자. 나는 이영훈의 투병 소식을, 그것도 임종이 사실상 임박했다는 소식을 언론계나 평론계에서 가장 먼저 접한 사람의 하나다. 유열의 음악앨범에 출연할 당시 열이형을 통해 대장암 수술 소식을 접했다. <옛사랑>컴필레이션을 발매했을 무렵이다. 그때만 해도 희망이 남아있었다. 작년 가을 언젠가 이영훈씨의 측근을 통해 시한부 인생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생애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인터뷰를. 이를 통해 이영훈의 바이오그래피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에게 과연 무엇을 물어볼 수 있을까. 그러기엔 내가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배기자에게 그 소식을 얘기했고 이영훈의 투병과 관련해서 최초의 기사는 여기에 나왔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절대 쓸 수 없는 기사다. 일이 있어서 오늘 하루종일 엠비씨에 머물렀다. 매 시간 이영훈의 노래가 나왔다. 모든 디제이들이 이영훈의 부고를 전했고 추모했다. 생전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의 죽음에 그 때 마다 가슴이 저며왔다. 일어나서 부고를 접하자마자 '옛사랑'을 들었고 지금도 '옛사랑'을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사랑이란게 지겨울 때가 있지 내 맘에 고독이 너무 흘러 넘쳐 눈 녹은 봄날 푸르른 잎사귀에 옛사랑 그대 모습 영원속에 있네 수많은 가수들이 지나간 사랑을 노래한다. 이별을 노래한다. 그 노래들을 만든 어떤 사람도 이영훈의 이런 가사를 쓰지 못한다. 그의 부인은 이영훈이 만든 노래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자기 이전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이토록 절실하게 살아있으니 당연한게 아니었을까. 그게 이영훈이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빵컴필레이션에는 이영훈과 동명이인인 이영훈의 '돌아보니 청춘이었구나'라는 노래가 담겨있다. 이문세의 3,4,5집을 다시 듣는다 돌아보니 청춘이었다. 아니, 소년이었다. 평생 잊지못할 노래들이었다. 계속, '옛사랑'이 흐른다. 페이드 아웃으로 멀어지는 이문세의 목소리가 울린다. 1월 22일 아침 이영훈이 이문세에게 이런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문세씨 오늘 눈이 많이내리죠? 서동주시인이 오늘같은 눈이 많이 내리는날 하늘로 올라갔듯이 이런 눈오는날 나도...올라갔으면 좋겠어요~" 오늘, 집까지 걸어왔다. 남들게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다. 그랬다. 옛사랑 첨부한다. 아마, 다음 주 M25에 실릴 글이다. 이영훈과 이문세의 만남을 그려봤었다. 그 때는 이영훈이 떠날지 알지 못했다. 고쳐서 실어야지. 당연히. 한국 가요 사상 최고의 컴비는 누구일까. 김희갑과 양인자? 서수남과 하청일? 이들의 이름이 빠지면 섭하다. 이문세와 이영훈. 말 그대로 주옥같은 히트곡을 쏟아내며 팝송보다 한 수 아래라 여겨지던 가요를 업그레이드 했던 그들이었다. 19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당시 음반 시장에 이영훈이 만들고 이문세가 불렀던 앨범이 가졌던 영향력은 꽤나 컸다. 보통 3500원 정도 하던 LP값이 1988년 이문세 5집의 발매와 함께 5000원으로 인상됐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불티나게 팔렸다. 이 황금 콤비의 첫 만남은 소박했다. 1980년대 중반, 이문세가 아직 '히트가수'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던 시절의 얘기다. 광화문의 한 빌딩에 녹음실인 랩 스튜디오와 음반사인 킹 레코드가 위아래층에 나란히 입주해있었다. 의욕적으로 신촌 블루스를 이끌고 있던 엄인호가 랩 스튜디오에 있었고 이문세는 킹 레코드 소속가수였다. 신촌홍대파의 수장이었던 엄인호에게 이문세는 매일처럼 곡을 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엄인호는 자신의 곡이 이문세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대신 이문세에게 말했다. "내가 만든 곡은 너한테 맞는 곡이 없으니 그러지 말고 저 친구한테 가봐라. 너한테 어울리는 곡은 저쪽에 있다." '저 친구'는 신촌블루스에서 건반을 맡고 있던 이영훈이었다. 엄인호는 덧붙였다. "너희들 둘이 손발을 맞추면 그럴듯한 그림이 나올 것 같아." 낡은 기타 한 대, 손때 묻은 피아노가 전재산이었던 이문세와 이영훈, 서울 수유리 이영훈의 자취방에서 동거하며 곡 작업을 시작했다. 1985년 11월 발매된 이문세의 3집, '난 아직 모르잖아요', '소녀'같은 곡들이 담겨있던 그 앨범이 동거의 결과였다. 150만장의 판매고가 고생의 보답이었다. 그들의 노래는 조성모를 비롯, 리즈, 서영은, 이수영등에 의해 아직까지 끊이지않고 리메이크되고 있다. '이문세없이 이영훈 없고, 이영훈 없이 이문세 없다'라는 말처럼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얹힌 이영훈의 작품은 이문세의 노래만큼의 감동을 주지는 못하는 듯 싶다. 그들 컴비가 만들어냈던, 가장 찐한 노래 중 하나인 '옛사랑'을 들어보라. 이 노래가 발표된지 10년이 훨씬 넘었지만 이렇게 가슴 저미는 사랑의 그림자를 요즘 노래에서 느낄 수 있던가. 이영훈은 현재 시한부인생을 선고받고 투병중이다. 얼마전 이문세는 병상을 찾아 그의 두손을 잡고 기도하며 기적이 일어나길 바랬다. 그들의 음악을 사랑했던 사람들 모두, 같은 심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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