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톰북 <Warm Hello From The Sun>

 


세상에는 소외받는 음악들이 참 많다.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청자들이 많은 편인 인디 씬에서도 마찬가지다. 납득할만하고 짐작할만한 이유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왜 이리 묻혀 버렸을까, 알 수 없는 음악들도 있다. 2004년 EP <Hello>를 발표했던 아톰북의 음악이 딱 그런 경우였다. 밥 딜런의 'You Belongs To Me' 리메이크를 포함, 총 5곡을 담고 있던 이들의 EP는 충분한 소구력이 있었다. 이른바 방구석 정서가 모던록, 포크신의 대세였던 그 당시의 분위기를 돌이켜본다면 더욱 그렇다. 바로 그 전해에 나름의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던 푸른새벽이나 이들과 같은해 데뷔했던 소규모 아카시아의 반향을 생각해보자. 그에 비춰보면  이 앨범이 그렇게 소리소문없이 등장했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데는 이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뭐로나 납득하기 힘들다. 아예 없다시피 했던 홍보?  활발과는 거리가 멀었던 공연? 변방 중에서도 변방이었던 레이블? (이 앨범은 선드라이 레코드에서 발매됐다. 물론 현재는 구할 길이 없다.) 그 외에도 얼마든지 이유를 갖다 붙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네 곡의 자작곡이 갖고 있던 소박하고 캐치한 멜로디와 심플하지만 딱 적절한 편곡만으로도 아톰북의 EP는 적어도 어느 정도의 입소문은 기대할만 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Hello>는 한 톨의 민들레 꽃씨처럼 날아왔다 어디론가 가버렸다. 나의 기억에서도 그랬다.

아톰북은 대부분의 연주와 보컬을 맡고 있는 SP와 드럼을 치는 로레즈, 그리고  기타 세션으로 참여했다가 현재 멤버가 된 (것으로 보이는) 3b로 이뤄진 어쿠스틱 팝/인디 록 밴드다. SP는 한 때 핑퐁레코드를 운영하며 아마추어증폭기의 <극좌표>등을 제작한 바 있다. 2004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Hello>이후 침묵을 지켰다. SP는 여성멤버들로만 이뤄진 월드뮤직 밴드 오르겔탄츠에서 베이스를 쳤고 빅 베이비 드라이버라는 이름의 솔로 활동도 벌였다. 물론 회사를 다니며 밥벌이도 했다. 밥벌이란 무서운 거다. 전문직이나 공무원이 아닌 이상, 자기 시간을 가질 여유는 점점 없어진다. SP도 그랬다. 무엇을 하는 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아톰북은 그렇게 잊혀질 뻔했다. 아아 그래, 하며 <Hello>와 개인적으로 갖고 있었던 데모 모음을 다시 꺼내 들은 건  역시 소리소문없이 등장한 <Warm Hello From The Sun>때문이다. 아톰북의 첫 정규 앨범이다.

이 앨범에 담긴 16곡의 수록곡은 대부분 2004년 이전에 만들어진 노래들이다. 이 데모를 들은 플라스틱 피플의 김민규가 앨범 작업을 제안했고 아톰북은 퇴근 후 시간을 쪼개 몇달간 레코딩을 했다. 김민규의 프로듀싱으로 완성된 <Warm Hello From The Sun>은 미국이나 영국의 인디 록 앨범이라 해도 전혀 의심할 여지 없는, 높은 완성도를 들려준다. 이는 모든 가사가 영어로 되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톰북의 노래에는 큰 덩어리로 말해 가요의 정서가 전혀 담겨있지 않다. 이들의 음악을 원심분리기에 넣고 돌린다면 도노반, 닉 드레이크에서 애주어 레이에 이르는 하나의 흐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모던 포크를 축으로 삼아 발전한 감성적 사운드 말이다. 송라이터 SP가 70년대 중반생임을 감안한다면 마땅히 있을 법한 80년대 90년대 가요의 어떤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90년대 이후의 국내 인디 음악도 마찬가지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난 이런 정서를 모던함이라고 부르고 싶다. 흔히 통용되는 모던록의 한국적 의미를 '가요 친화적인 록'이라는 뉘앙스가 아닌 '기존 가요와는 다른 스타일의 대중친화적 음악'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이런 모던함을 바탕으로 흐르는 아톰북의 음악은 엔 손을 녹이는 입김같다. '태양의 따뜻한 안녕'이라는 앨범 제목 그대로다. <Warm Hello From The Sun>은 겨울의 한 복판에서 느끼는 잠깐의 봄볕같은 앨범이다. EP에서 이미 충분히 보여줬던 방구석 정서를 유지하되 이를 전달하는 방식은 훨씬 세련되고 풍부해졌다. 보다 좋은 환경에서의 녹음과 다양한 방식의 편곡은 자칫 이런 음악에 따라 붙을 수 있는 단어인 찌질함을 빗자루로 슥삭슥삭, 쓸어버린다. 찌질함이 사라진 자리에 포근히 자리잡고 있는 건 재치와 아이디어다. 'Giggle Bee'의 기타 애드립에서 차용되는 '젓가락 행진곡'의 멜로디는 그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우울함, 또는 궁상을 떨쳐버린 보컬은 나도 모르게 흥얼거릴법한 선율을 편하게 속삭인다. 짧으면 1분이 좀 넘고, 길어야 3분이 좀 넘는 노래들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기타와 베이스, 프로그래밍은 곡에 딱 적절한 멜로디를 입히고 빠진다. 담백하고 부드럽다. 달지않은 솜사탕같다. 이런 곡들이 영원히 사장되었더라면 매우 아쉬웠을 것이다. 사라진 줄 알았던 편지가 병속에 담겨 몇년이 지난 후, 청각의 해안에 도착했다. 겨울 바다의 온기를 그대로 담아.


by 김작가 | 2008/01/17 05:58 | 음악이 해준 말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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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1/17 11:0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01/17 11:5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01/17 15:5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浪- at 2008/01/17 17:42
아 좋네요:)
Commented by 태엽이 at 2008/01/18 19:42
앗. 화요일날 위시리스트에 넣었던 음반인데, 여기서 만나니 반갑네요^^
Commented by espresso at 2008/01/23 23:56
말랑말랑 좋은데요~
Commented by 다녀오다 at 2008/01/24 13:56
아톰북. 오늘 처음 듣고. 찾아다니다가 왔습니다. 언 손을 녹이는 입김같다는 말에 동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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