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우르 로스 <Hvarf / Heim>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요정의 존재를 믿는다. 그럴만하다. 세계 어디보다 많은 눈을 보는 나라다. 백야의 하늘에는 오로라가 내린다. 태고의 인간이 느꼈던 자연에 대한 경외와 경이를 간직하고 있다. 문명도 과학도 이를 없애지 못했다. 그래서 오딘과 트롤은 아이슬란드에서 신화학의 존재가 아닌, 신화의 주인공으로 살아 있을 것이다. 시우르 로스는 그런 아이슬란드의 신비를 음악으로 구현하는 밴드다. 이들이 세계에 이름을 알린 건 90년대 말이었다. 이들의 출세작인 <Agaetis Byrjun>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 (그들은 '희망어'라는 독특한 언어체계를 만들어서 가사를 쓴다)와 1년 내내 겨울만 있는 나라의 멜로디로 음악의 세계에 겨울의 축복을 내렸다. 이 앨범은 아이슬란드에서 1위를 기록했고 라디오헤드는 시우르 로스를 올렸다. 누구도 얘기치 못한 성공이었다. 낯선 음악이었지만, 부인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시우르 로스는 눈 내리는 아침의 대지를 하얗고 투명한 물감으로 그려낸 첫 인류인지도 모른다. 그림으로 작곡을 하려했던 칸딘스키가 이들의 음악을 들었다면 하얀 캠버스를 더욱 하얗게 채색했을지도 모른다.

앨범 타이틀과 곡 제목에서 일체의 언어를 배제한 <( )>, 첫 메이저 데뷔작인 <Takk....>를 거치면서 이들의 커리어는 순록의 뿔처럼 자라났다. 그들은 다시 아이슬란드로 돌아가 두 주동안 고향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곳곳에서 연주했다. 대규모 스타디움 콘서트가 있었고 공원 한 구석에서의 쇼케이스가 있었다. 댐 건설 반대 현장에서의 언플러그드 쇼케이스가 있었다. 시우르 로스의 첫 라이브 앨범 <Hvarf / Heim >은 그 여행의 기록이다. 이 앨범에서는 우리가 라이브에서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뜨거움은 없다. 현장음도, 관객의 우렁찬 함성도 없다. 영하의 바람을 몸속에서 데워 내뱉는 욘 소르 비르기손의 목소리가 있고, 엘프들의 협연을 연주하는 듯한 밴드의 사운드가 있을 뿐이다. 또 다른 스튜디오 버전이라 해도 의심할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우르 로스의 현장은 풍경으로 승화한다. 이들은 위대하고 신비한 자연을, 그와 조화를 이루는 영혼을 음표가 아닌 소리 그 자체로 전달한다. 태고의 음악이 문명을 거치지 않았다면 이랬을지도 모른다. 문명으로부터 벗어나 설원에 정착했던 옛 사람들이 느꼈을 초월적 존재를, 시우르 로스가 전승한다.



Agaetis Byrjun

by 김작가 | 2008/01/10 05:03 | 음악이 해준 말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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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1/10 06:5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浪- at 2008/01/10 10:31
시거 로스가 아니었군요.
자기들 언어를 만들어서 노랫말 적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ㅎ;
Commented by 김작가 at 2008/01/10 13:12
비공개,-浪-/ 아이슬란드어로는 시우르 로스라고 읽는다 하는군요.
Commented by 쑴별 at 2008/01/11 15:23
기다리는 비 소식처럼 좋아요.
Commented by belle at 2008/01/14 16:09
나 이거 들으며 찌릿해하고 있다네. 집에선 꼭 디비디를 플레이해야겠어.
Commented by 총천연색 at 2008/01/23 09:06
덕분에 한 아티스트를 또 알게 되었습니다.
^^ 감사드려요. 자주 찾아 뵐게요.

시우르 로스라.
Commented at 2009/01/02 22:13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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