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의지의 원동력



신년을 맞아, 그는 들떠있었다. 크나큰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동정과의 굿바이. 사귄지 이제 석달쯤 되는 그녀와의 스킨십은 이제 진행될 대로 진행됐다. 최후의 한 걸음만 내딛으면 그는 영원히 강 이쪽과의 세계와는 이별을 고할 수 있는 것이다. 강 건너편이 코 앞에 보이는, 바야흐로 그런 단계였다. 석달전쯤 그녀를 만나고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하는 승부욕과 그녀 역시 처녀였기에 함부로 첫 경험을 치루게 해서는 안된다는 사명감이 교차했다. 승부욕으로 스킨십의 단계를 높여왔고, 사명감으로 최후의 한 걸음을 내딛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 날이 왔다. 때는 바야흐로 1월 1일, 새해의 첫 시작에 사랑의 마지막 한 점을 찍자고 크리스마스에 약속한 터였다. 그녀는 그의 제의에 얼굴을 붉히며 쪽, 뽀뽀를 했다.

시내에서 그녀를 만났다. 손을 잡고 거리를 걸었다. 살면서 이렇게 가슴 뛴 적이 또 있었던가. 저녁을 먹으면서도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 지 코로 들어가는 지 알 수 없었다. 술을 마실 때도 얼굴이 붉어지는 게 알콜 때문이지 이 밤의 끝 때문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먹을 거 다 먹고, 마실 거 다 마셨다. 남은 건 하나였다. "갈까?"라는 그 한 마디가 왜 이렇게 안 떨어지는 지, 그리고 그녀는 그 아무것도 아닌 말에 왜 그리 긴장한 티를 내는지. 가보지 못한 세상에 발을 내딛는다는 건 그토록 긴장됐다. 자리를 박차다 시피 일어섰다.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모텔촌으로 향했다. 그와 그녀는 1월 1일이 어떤 날인지, 그때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나름대로 인터넷을 뒤져 알아낸 분위기 좋은 모텔 입구에 들어갔을 때, 그는 경악했다. 세상에, 연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번호표를 받아들고 빈 방이 날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 아닌가. 이곳이 모텔인가 은행인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운터에 가서 빈방있냐고 물어봤다. 직원은 너무나 친절하게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한다고 말했다. 그런 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눈치였다. 기다릴 게 따로 있지, 어떻게 모텔을 기다리나 싶었다. 그 뻘쭘한 분위기를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애써 의연한 척, 그녀에게 다른 곳으로 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마찬가지였다. 그 일대의 모텔 촌은 모두 방이 없었다. 열 몇 곳을 돌아다녀도 그랬다. "우리 조금 먼 데로 갈까?" 집에서 시내까지 오는 길에 외따로 떨어져있는 모텔을 몇 개 봐뒀던 차다. 그곳으로 가면 방이 있겠지.

그러나 천만에. 마찬가지였다. 평소에는 절대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모텔 조차도 모두 꽉꽉 들어차있었다. 택시를 몇 번이나 탔던가. 그래도 허사였다. 그와 그녀에겐 절망, 이전에 오기가 생겼다. 부동산 청약에서 스무번쯤 고배를 마신 복부인이라도 된 듯, 씩씩 거리며 시내 이곳 저곳을 뒤지고 다녔다.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정초부터 다들 뭐하는 짓들인가. 1월 1일이란 사랑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그런 날이란 말인가. 새해 첫 날 부터 육체적 사랑을 나눔으로써, 한 해 동안의 길흉을 점치는 그런 풍습이라도 생긴건가.

그들이 당도한 곳은 정말, 저런 곳에서 과연 누가 자나 싶을만큼 허름한 여인숙이었다. 우리의 첫경험은 로맨틱한 곳에서, 라는 생각은 이미 날아가버린지 오래라 일단 들어갔다. 늠름했던 그는 온데 간데 없고, 한 마리 수컷만이 여인숙앞에 있었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여기라도 있으니 다행이지, 그런 자포자기 상태였다. 젠장, 형광등도 갈지 않아 깜빡꺼리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방에 그녀를 남겨두고, 그는 샤워를 했다. 이제 모든 게 잘 될거야. 이것도 추억이지, 라며 몸을 닦고 나오다가 정체 불명의 미끄덩한 액체를 밟았다. 그는 발라당 넘어졌고, 깜짝 놀란 그녀는 첫경험 따위 다 잊어버리고 쓰러진 그에게 달려오다가 역시 미끄러지고야 말았다. 방바닥에 쓰러진 채 그는 두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동정을 뗀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 그리고 자취를 하는 친구들은 경험이 많을 수 밖에 없다는 것.

바로 그 다음 날, 그는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으로 달려가 펀드에 가입해버렸다.


일간스포츠 섹시토크 원고

by 김작가 | 2008/01/07 07:40 | 어른들의 놀이터 | 트랙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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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달밤에 산들바람 at 2008/01/09 22:54

제목 : 여관에 머무를 방이 없어서
독립의지의 원동력 - 김작가 모텔비 25만원·우유한잔 1만원…"바가지 상혼 너무해" – 노컷뉴스 친구: 야, 너 왜 예수를 낳을 때 요셉하고 마리아가 머무를 여관이 없었는지 알아? 달바람: 그, 글쎄; ‘구유에 누인’이 가진 상징을 타당하게 설명하려면 여관에서 자면 안 되고, 그래서 후대에 삽입된 이야기가 아닐까;; 친구: 크리스마스니까. 달바람: 아(...). 크리스마스전에 친구들하고 이야기하다가 나온 농담인데, 시기도 ......more

Commented at 2008/01/07 11:0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01/07 11:1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김애란 at 2008/03/14 21:11
이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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