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딜가나 디지털 타령이다. 벌써 몇년됐다. 음악계만 해도 그렇다. 디지털음악발전협의회라는 단체가 생길만큼 디지털은 음악계에서도 화두다. 그런데 과연 디지털이 뭘까, 라고 묻는다면 조리있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는 것 같다. 올해 정치판에 유난히 많이 등장했던 진정성 같은 단어처럼 기표의 이미지만 존재하고 기의는 알쏭달쏭한 단어 아닌가. 그러다보니 디지털의 진정한 힘은 종종 잊혀진다. 디지털은 아날로그로 생산된 컨텐츠의 유통과 소비를 대처할 뿐 생산 그 자체를 대처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설명하자면 이렇다.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음원은 공장에서 음반의 형태로 생산되고 물류망을 통해 유통된다. 음반을 사지 않으면 음악을 소유할 수 없었다. 테이프로 복사해서 소유하면 음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음반은 mp3로 리핑되어 네트워크를 타고 시간과 공간과 돈의 제약을 넘어 언제 어디서나 소유할 수 있는 형태로 변했다. 원본의 가치란 건 사실상 소멸했다. 음반이 리핑되는 순간, 아날로그는 디지털 파일로 바뀐다. 유통과 소비가 디지털로 환원되는 것이다. 그러나 생산, 혹은 창작은 여전히 아날로그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 과정을 디지털로 환원할 수는 없을까. 즉, 디지털의 참된 힘을 창작에 반영할 수는 없을까. 이런 의문에 꽤 고려할만한 답을 던지는 책이 <디지털 모자이크>다. 저자인 스티븐 홀츠먼은 이 책을 통해 사이버 공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현실 세계를 대처하는 것 뿐 아니라 기존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했던 경험과 예술이 디지털을 통해 가능할 수 있음을 풍부한 예시를 들어 설명한다. 불연속성과 상호작용, 역동성과 비실체성 등 디지털 세계의 특징을 통해 새로운 예술이 탄생할 수 있는 길을 암시하는 것이다. 음악의 예를 들자면 브라이언 이노의 앰비언스 뮤직이 될 것이다. 그는 코안 뮤직(koan music)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특정한 환경안에서 컴퓨터가 스스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환경 음악을 창시했다. 작곡의 주체가 인간에서 컴퓨터가 된 것이다. 쉽게 말해 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의 비주얼 효과가 음악에 반응해서 형성되듯, 이 프로그램을 통하면 음악이 여러 환경에 반응해서 생성되는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 중에서 하나를 고르면 된다. 즉 인간은 디지털을 통해 창작의 주체에서 절대자로 격상될 수 있음을, <디지털 모자이크>는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여러 생각이 떠오른다. 스트리밍이든 mp3든 기존의 음악은 창작자와 청취자를 나눈다. 그러나 시공간을 초월하고 인터랙티브적인 특성을 강조하는 사이버스페이스를 잘 활용한다면 창작자와 청취자의 구분이 없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작곡가인 필립 그래스가 ‘고스트 댄스’라는 사이트를 통해 이 사이트에 접속한 사람들이 하나의 음원이 되고, 그 음원들이 모여 거대한 교향곡을 만들어내는 실험을 했듯이 말이다. 얼마전 영국의 올스타 프로젝트인 플레이어스는 <From The Six Corner>라는 음반을 통해 재미있는 시도를 했다. 이 앨범에 담긴 ‘What's Your Problem?'이라는 노래를 기타, 베이스, 드럼 등 모든 트랙별로 따로 들을 수 있게 한 것이다. 각 트랙의 조합도 물론 가능하다. 전통적인 음악감상의 시대, 즉 마스터링이 끝난 단계의 최종 버전만을 들을 수 있던 때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형태의 감상이다. 디지털을 부정하거나, 자포자기할게 아니라 디지털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창작의 방법론을 연구해야하지 않을까. 라디오헤드가 <In Rainbows>를 미리 풀어버리면서 디지털 시대의 아젠다를 선점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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