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은 종종 정치적 순간의 주인공이 되곤 했다. 1987년 6월, 시청앞에 모인 백만의 인파가 함께 부르던 ‘아침이슬’은 6.29선언을 이끌어내는 촉매제였다. 월남전 반대 집회의 선봉에 서서 ‘We Shall Overcome'을 부르던 존 바에즈는 당시의 청년들에게 음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무모한 희망을 안겨줬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얼마 후, 로저 워터스는 무너진 장벽을 등지고 <The Wall>콘서트를 열었다. 영국 출신의 어번 듀오인 매터픽스는 지난해 아프리카의 대표적 내전지역인 수단의 다푸르로 날아가 난민캠프에서 생활하며 ’Living Darfur'라는 싱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모든 음악이 정치적일 필요는 없지만, 세상을 올바르게 담아낸 음악은 어떤 정치적 메시지보다 마음을 울린다. 음악으로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했던 이들 중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을 만들어냈던 이는 밥 말리다. 1945년 태어나 1981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밥 말리는 팝 역사상 제3세계 출신으로는 최초로 슈퍼스타가 된 인물이었다. 레게의 황제였던 그는 세계에서 가장 담배를 멋있게 피는 사람이었고 아디다스 저지와 드레드 헤어를 보편적 패션 아이템으로 격상시킨 패션 피플이기도 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여자들을 곁에 두었으며 담배못지 않게 많은 마리화나를 달고 살았다. 그는 지극히 쾌락지향적인 인물이었고,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쾌락을 안겨주고자 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모든 노래들은 하나의 기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부르는 노래의 유형이나 그것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어떤 울림에 대해 좀 더 신경을 써야만 합니다.“ 이런 정신이야말로 진짜 밥 말리였다. 그를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면 그는 흥청망청거리는 레게 비트속에 자마이카 민중의 삶을 담았고 정치적 현실을 고발했으며 보편적인 인류애와 숭고한 이상향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밥 말리-노래로 태어나 신으로 죽다’는 그런 밥 말리의 일생을 다룬다. 그가 출생하던 무렵자마이카의 상황과 자마이카를 넘어서 전세계에 레게 비트를 물결치게 하던 화려한 시대의 영욕, 밥 말리에 의해 자국의 현실이 까발려지는 걸 두려워했던 자마이카 고위층들의 음모, 그로인해 영국으로 망명해서도 계속 발언을 멈추지 않았던 투사의 모습. 자마이카 음악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레게와 뮤지션들에 대한 연작을 냈던 스티븐 데이비스는 실로 방대한 자료와 애정을 바탕으로 밥 말리의 삶을 두툼한 책 한권에 담아낸다. 가장 흥겨운 음악속에 가장 뜨거운 메시지를 담아냈던 밥 말리의 삶이 이 전기를 통해 업비트, 다운비트를 넘나들며 쿵짝 거린다. 겨울없는 나라에서 일년 내내 흐르는 그의 음악처럼, 책장도 멈추지 않고 넘어간다. 1978년, 망명중이던 밥 말리는 평화콘서트를 위해 다시 자마이카를 밟았다. 4월 22일, 무대에 선 밥 말리는 ‘One Love'를 부른 직후, 예정에 없던 이벤트를 벌였다. 양쪽으로 갈라져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던 자마이카의 두 수뇌부, 마이클 만리와 에드워드 시가를 무대위로 불렀다. 그리고는 둘의 오른손을 잡고 자신의 머리 위에서 두 손을 맞잡게 했다. 그 아래에서 밥 말리는 노래를 마무리했다. “이제 자마이카에 평화가 왔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이 책은 그 직후의 이야기도 전한다. 만리와 시가는 곧 불편해하는 기색을 드러내더니 다시 손을 놓았다. 나중에 그 모습을 지켜본 밥 말리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자기들도 자신들의 잘못을 아는거지.” 그것이 역사의 진실이었다. 밥 말리가 연출한 이벤트가 자마이카를 바꾸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본 자마이카의 민중들은 화합에 대한 희망을 꿈꿨을 것이다. 밥 말리의 말을 응용하자면, 음악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바꿀 수 있다는 기대를 준다. 그런 기대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지금 한국의 음악계에 그런 기대를 안겨줄 수 있는 뮤지션이 누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더욱 더. ![]() ![]()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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