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를 기다리며

지금 가요 관련 뉴스를 장식하는 가수들은 90% 이상이 대형 기획사 소속이다. 방송을 틀어도 예외는 아니다. 노래를 부르던, MC를 맡던, 신변잡기를 늘어놓던 공중파나 케이블을 틀어서 나오는 가수들은 다 대형 기획사 소속이다. 그러다보니 팬들도 기획사 정보에 훤하다. 한 때 영화에 관심있던 사람들이 어느 영화를 어느 제작사에서 만들었는지 줄줄이 꽤고 있었듯, 가수의 팬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가 어느 기획사 소속이고 경쟁 가수는 어느 기획사 소속이며 한국 음악 산업에 영향력을 미치는 기획사는 뭐뭐가 있는지를 블로그에 포스팅할 만큼 한국 기획사의 지형도를 꽤차고 있다. SM, JYP,YG를 비롯해서 엠넷미디어, 팬텀 등 다 합쳐도 다섯손가락을 크게 넘어서지 않는 기획사들이 지금의 가요계를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지난 해 인기를 누렸던 가수들을 순서대로 살펴보자. 아이비는 팬텀 소속이다. 만약 '아이비 동영상'사건만 터지지 않았으면 연말 가수상은 따놓은 당상이었으라는 게 연예계의 후문이었을만큼 아이비의 폭발력은 막강했다. '아리랑'으로 변함없는 최다 음반 판매량과 '또 소몰이냐'라는 변함없는 비난을 동시에 받았던 SG워너비는 지난 해 엠넷미디어로 인수합병된 GM소속이었다. 오랜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양파는 상반기 최고의 히트곡이었던 '사랑 그게 뭔데'로 컴백에 성공했다. 그런데 양파의 컴백이 확정되었던 시점부터, 포털 사이트의 연예 뉴스에는 양파 관련 소식이 쏟아졌다. 사실 양파가 90년대 톱 가수는 아니었다. 양파의 골수팬을 제외한다면 90년대 그녀의 노래중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는 곡은 '애송이의 사랑' 정도 밖에 없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컴백전부터 끊임없이 포털의 메인에 올랐고, 활동을 시작하면서도 그런 추세가 이어졌다. 양파와 비슷한 공백기를 가졌던 가수들도 컴백했지만 그들에게는 포털 메인이라는 귀한 자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양파를 컴백시킨 회사는 팬텀이었다. 하반기는 아이돌의 천국이었다. 빅 뱅과 원더걸스, 소녀시대가 주거니 받거니 톱을 차지하며 아이돌 르네상스를 실감케 했다. 휘성과의 재계약에 실패한 YG, 비와의 계약 종료로 위기에 빠진듯 보였던 JYP는 각각 빅뱅과 원더걸스로 차세대 성장 엔진을 달았다. 소녀시대는 SM의 불패신화를 이어가는 2007년의 성과물이었다. 

 한국에서 기획사의 시대가 열린 건 90년대 중반이었다. 이수만이 설립한 SM이 알다시피 H.O.T.와 S.E.S.등으로 대박 신화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그 때 부터 지금까지 기획사에서 가수를 내놓는 공정은 네 단계로 정리된다. 우선 캐스팅이다. 길거리든 오디션이든 될성싶은 아이가 있으면 영입한다. 그 다음에는 트레이닝이다. 그렇게 캐스팅한 가수 지망생에게 노래와 춤, 방송용 화술 등을 교육시킨다. 요즘은 바야흐로 멀티 엔터테이너의 시대, 연기자 겸업을 위해 연기 지도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갈수록 스타가 되기 힘들다보니 트레이닝 기간은 점점 길어지는 추세다. 어느 정도 트레이닝이 된 가수 지망생이 상품가치가 있다 싶으면 프로듀스의 단계로 넘어간다. 스타 작곡가에게 곡을 받고 첨단 레코딩 장비를 이용해 음반을 취입한다. 물론 노래를 굳이 잘할 필요는 없다. 오토튠이란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음정이 다 나가도 매끈하게 가다듬을 수 있고, 첨단 편집 시스템을 이용해서 음 하나 하나를 이어붙여 한번에 부른듯한 노래를 만들 수 있다. 그 보다는 코디네이터나 스타일리스트들이 얼마나 룩을 잘 만들어내는지가 중요하다. 얼굴에 약간 결함이 있으면 데뷔하기 전에 성형수술로 고친다는 건 상식중의 상식. 어차피 데뷔한 후 언론에서는 음악보다 안무와 패션과 외모를 주로, 아니 거의 올인하다시피 다룰테니 비주얼이 압도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자, 그렇게 상품은 만들어졌다. 이제는 어떻게 론칭할까, 마케팅을 고민할 때다. 이미지 컨셉을 잡고 초기 보도자료에서 이를 집중 부각시킨다. 그리고 어느 프로그램을 통해서 데뷔할 것이며, 언론 인터뷰에서는 어떤 컨셉으로 응할 것인지가 정해지고 사전에 팬클럽이 결성되어 바람몰이에 나선다. 말하자면 산학일체에 가깝다. 어릴때부터 철저히 스파르타 교육을 통해서 회사가 원하는 '인재'를 만든 후 회사가 원하는 방향의 업무에 종사하는 격이다. 따라서 그들은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라, 일단 이겨놓고 싸운다. 방송이 엔터테이너에게 원하는 모든 역할을 그들은 데뷔와 동시에 이미 습득하고 있다. 팬클럽의 막강한 지원으로 시청률도 보장된다. 방송으로서는 유명 기획사 출신의 검증된 신인들에게 더 많은 자리를 할애하는 게 당연하다. 음악 홍보에 있어 1차적 역할을, 그리고 가장 막강한 역할을 하는 방송에서 이들 기획사 출신의 지분이 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리고 그 결과, 올해는 폐지됐지만 연말 가요시상식에서 언젠가부터 대형 기획사 출신 가수들이 상을 싹쓸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기가 만든 노래를 자기가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들이 방송에 설자리는 그렇게 사라져갔다.

말재주도 변변찮고 쇼프로그램에 나와서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며 외모마저 시원찮으며 뜨기 까지 상대적으로 시간이 걸리는,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음악 밖에 없는 싱어송라이터형 뮤지션들은 TV를 못미더워했고 TV로서도 그들에게 목숨걸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도 괜찮았다. 음반시장이 건재했으니까. 그리고 라디오가 음악 중심이었으니까. 이승환이나 015B처럼 TV 출연한번 하지 않고도 스타덤에 오르고 100만장 이상의 음반을 팔며, 잠실 주경기장을 꽉 채울 수 있는 콘서트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은 그것이었다. 그러나 음반 시장이 붕괴하고 라디오에서 음악 대신 수다가 흐르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자신의 시장을 잃어버렸다. 그나마 한 때 잘나가던 뮤지션들은 새 앨범을 낼 때 옛 인기에 힘입어 주목이라도 받건만, 신인들로서는 아예 주류 시장 진입의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주류 음악계의 싱어송라이터의 계보는 90년대를 끝으로 끊어지고야 말았다.

그렇다면 그들이 갈 곳은 어디였을까. 인디 신이다. 주류음악계가 철저히 '그들만의 리그'로 재편되면서 그 안에 끼지 못하는 뮤지션들은, 즉 기획사가 원하는 음악을 받아서 '연예인질'을 하는 게 싫었던 이들은 전부 인디 신에서 데뷔했다.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을 시작했고 인디 레이블에서 음반을 발매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허밍 어번 스테레오나 재주소년 처럼 불과 10년전만 해도 주류에서 소개되도 아무 문제없을 음악들까지 전부 인디 신에 몰리는 일이 벌어졌다. 이는 사실, 선배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어느 중견 제작자는 말한다. "90년대 끝자락에 데뷔한 뮤지션들은 물론이고, 그 전부터 날리던 뮤지션들도 다 선배들이 끌어줘서 데뷔한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런 문화가 없어졌다. 자기들만 먹겠다고 한 것이다." 음악이든 영화든 계보란 중요한 것이다. 계보가 이어져야 선배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기존의 팬과 새로운 팬이 교류하며 현재에도 유효한 과거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90년대의 뮤지션들이 이를 놓침으로서 계보가 끊어지며 그들은 조로하고야 말았다. 얼마전 인터넷을 달궜던 '윤하-토이 사건'도 그래서 벌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빨리 팔아먹고 빨리 다음 상품을 내놓는 기획사 시스템이 음악 일선을 장악한 상황에서 그 토이 조차도 과거로 밀려나고야 만 것이다. 생각해보라, 불과 90년대의 음악이 불후의 명곡 취급을 받는 구조라니. 이승환처럼 꾸준히 앨범을 내놓고 왕성한 활동을 하는 가수가 원로 가수 대접을 받는 상황이라니. 이건 정말이지, 어이없는 현실이라고 밖에는 달리 말할 길이 없다.

사실. 2007년을 돌이켜보건데 싱어송라이터형 뮤지션들은 어느 때 보다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좋은 앨범을 내놨다. 이현우, 이적, 이승열, 클래지콰이, 이상은, 루시드 폴, 토이에 이르기까지. 인디신도 마찬가지였다. 할로우 잰, 스마일스, 갤럭시 익스프레스 같은 신인들이 있었고 못, 전자양, 바셀린, 럭스 등이 녹슬지 않는 음악적 재능을 과시했다. 그리고 주류와 인디 신 사이의 끊어진 허리가 이어질 조짐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열린 그랜드 민트 페스타에서는 윤상, 이승환 등의 거물급 뮤지션들이 '감성 음악'의 기치 아래 인디 신의 모던 록, 포크 뮤지션들과 함께 공연했으며 토이의 새 앨범에는 이지형, 타루 같은 인디 출신의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했다. 다만 갈수록 검증된 스타만을 좇는 연예 매체의 관심에 들어가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끊어진 허리가 조금이라도 이어지며 음악을 중심에 세우는 뮤지션들의 세대를 초월한 연대가 만들어질 때, 그리고 자신의 음악으로 대중을 만나려는 뮤지션들이 계속 배출될 때, 기획사 시스템이 장악하고 있는 판도는 변할지도 모른다. 90년대 가수들이 컴백할 때 관심이 쏟아지고 90년대의 대중음악계에 대한 회고가 이어지는 것이 그 징후다. 나는 이런 현상에서 '2000년대와 함께 음악은 끝났다. 90년대 음악이 정말 좋았지'라는 대중의 무의식을 느낀다. 그들의 회한과 아쉬움을 달래줄 음악, 마케팅의 힘으로 억지로 유행하는 게 아니라 입소문을 타고 유행할 수 있는 음악이 복원될 때 과거로만 향했던 시선이 비로소 현재로 돌아올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음악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음악을 안 듣는 사람은 없다. 상품이 아닌 음악을 듣고 싶을 뿐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미학적 발전을 이끌어왔던 뮤지션들과 한국 대중음악의 미래를 만들어갈 이들이 나설 차례다. 엔터테인먼트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은 지금의 음악계에 진짜 뮤지션들이 역습을 시도할 때가 왔다. 그들이 하나의 집단을 형성할 때, 불법다운로드 타령에 비웃음치는 대중의 일부나마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싱어송라이터형 뮤지션들에게는 음악의 가치를 주장할 분명한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음악으로 이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지와 연대는, 음악이 망할 거라는 푸념보다는 훨씬 설득력이 있다. 그러니 뮤지션들이여, 제발 뭉쳐라. 지금보다 훨씬 단단하게.

GQ 1월호 원고

by 김작가 | 2007/12/10 19:00 | 스토리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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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꿈의대화 at 2007/12/11 01:43
아멘
Commented by 석우 at 2007/12/25 19:47
굉장히 인상 깊은 글입니다. 잘 봤습니다. '문화적인 모든 곳' 에서는 오히려 경제 분야든 아니면 다른 곳들보다 연대라는 의식이 참 약한 것 같아요. 다른 곳에 가면 연대라는 것은 학연이니 지연이니 하며 왜곡된 모습들로 보여져 지탄 받기도 하는데 어째 적자생존의 원리일까, 선배와 후배가 사이 좋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기 참 힘든 것 같습니다. 저도 노력하면서, 이런 연대를 기다리고 또 만들어가는 한 사람이 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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