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야만 했을까
본격적으로 대선이 시작되면서 후보들이 로고송을 내놓았다. 물론 기존 인기곡들을 개사한 '노가바(노래가사바꿔부르기)'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이명박 후보의 로고송들이다. 온갖 의혹에도 떨어지지 않는 철의 지지율을 과시라도 하듯, 쌍끌이 어선을 동원하여 세간의 이목을 끌만한 노래들은 다 같다 붙였다. 박현빈의 '오빠만 믿어', 슈퍼 주니어의 '로꾸꺼', 올라이즈밴드의 무릎팍 도사 시그널, 그리고 노 브레인의 '넌 내게 반했어'다. 응? 노 브레인?

한국에서 연예인은, 특히 가수들은 정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걸 움찔해한다. 대중의 인식이 가수가 정치에 관련되는 걸 영 마뜩찮아 하는데다가 줄을 잘못 섰다가 어떤 피해 (요즘은 네티즌들로부터)를 입을지 몰라서다. 지난 대선때 공개적으로 한 후보를 지지하고 선거 운동에까지 참여했던 신해철도 그 후 꽤나 당한 모양인지 올해 새앨범을 낸 후 가진 인터뷰에서 아주 학을 띠는 걸 지켜봤다. 그래서 한국에서 어느 가수나 작곡가가 특정 후보에게 자신의 노래를 로고송으로 제공했다고 해서 정치적 행동으로 볼 필요는 없다. 별로 그렇게 보는 사람도 없다. 그건 그냥 거래일 뿐이다. 그래서 '오빠만 믿어' '로꾸꺼' 같은 노래가 쓰이던 말던, 사실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노 브레인이라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중에게 각인되어있는 노 브레인은 '넌 내게 반했어'다. <라디오스타>에 출연하며 그 노래를 부른 노 브레인은 영화의 흥행결과 이상의 수혜를 받았다. 공중파에 진출한 건 물론이고,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전국을 돌며 온갖 축제와 행사에 불려다녔다. '노 브레인이 행사계를 쓸고 다닌다더라'라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했다. 나는 노 브레인의 10년 친구다. 친구로서 그들의 성공을 축하해주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대선 로고송에 노래가 쓰였으니 꽤 짭잘했겠구나, 라며 축전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이명박'으로 가사가 바뀌어 흘러나오는 노 브레인의 노래를 듣는 기분은 찹작하다. 이건 내가 다른 후보를 지지하기 때문이 아니다. 아직 뚜렷한 지지 후보도 없거니와, 친구의 노래가 내가 싫어하는 후보의 로고송으로 사용된다 해도 받아들일 똘레랑스 정도는 갖고 있다. 친구 얘기를, 그것도 안 좋을 수도 있는 얘기를 공적인 지면에 쓰는 게 썩 내킬리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꺼내는 건 그들의 옛날 모습이 떠올라서다.

노 브레인의 1999년 EP <청춘 98>은 한국 펑크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이라 해도 좋다. 네 곡이 담겨있는 이 음반에서 마지막에 실린 곡은 '아주 쾌활한'이란 노래다. 당시 기타리스트였던 차승우가 곡을 썼고 지금도 노래하고 있는 이성우가 가사를 썼다. 99년 발표됐지만 96년 쯤 만들어진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문민정부 좇까는 소리/문민정부란 개소리는 개한테나 줘버려라....씨발 청와대/씨발 안기부....' 1997년 발표한 위퍼와의 합동 앨범에는 '아름다운 세상'이란 노래가 담겨있다. 역시 이성우가 가사를 썼다. '우리가 가진 건 분노와 소외감/질리게 들어온 강요와 설교뿐/잘 사는 사람 계속 잘살고 /못 사는 사람 계속 못사는..' 2001년 노 브레인의 2집에서 이성우는 '투혼'이란 노래를 만들었다. '가슴 속의 그려진 고통을 지워버리고/ 두 눈을 지긋이 감고/ 깊은 마음 속의 투혼을 목 터질듯 불러보리라'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며 밥 말리의 “음악으로 혁명을 일으킬 수는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깨우치고 선동하고 미래에 대해 듣게 할 수는 있다”라는 말을 실감하곤 했었다. 동세대에 이런 이야기를 멋진 음악으로 부를 수 있는 친구를 두고 있다는 게 더없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꽤 많은 소년소녀들이 그런 노 브레인의 음악과 태도에 감화되어 펑크 키드의 길로 들어섰다.

그 때의 노 브레인과 지금의 노 브레인을 단순 비교하는 건 불가능하다. 초기의 음악적 두뇌였던 차승우가 2집을 끝으로 탈퇴한 탓이다. 그 후 '넌 내게 반했어'를 발표하고 성공을 거둔 후 가진 인터뷰에서도 노 브레인은 '우리는 변했다. 예전의 노 브레인과는 다르다'라고 천명하곤 했다. 인정한다.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영원한 반항아란 좀처럼 찾기 힘든 법이다. 그들도 성장했다. 사람의 성장은 나무와 같다고 생각한다. 나무를 베어보면 중심에서 주변으로 나이테가 퍼진다. 묘목시절의 흔적을 지키며 나무는 자란다. 노 브레인이 문민정부의 후예인 이명박을 지지해서 로고송을 제공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거래일 뿐이니까. 다만, 10년전부터 꽤 오랫동안 지켜오던 패악질과 혈기의 흔적이 사라진 것 같아 씁슬할 뿐이다. 이명박의 로고송으로 사용된 '넌 내게 반했어'를 들은 날, 친구에게 이런 심경을 토로했다. "사는게 다 그런거지 뭐"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친구는 되물었다. "그래도 꼭 그래야만 했을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담배만 피워댔다.

이 글을 마무리 하는 지금, 스피커에서는 루시드 폴의 신곡 '사람이었네'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 역시 옛 친구의 하나다. 이 노래에서 루시드 폴은 제3세계에 가해지는 선진국들의 착취를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다. ‘세련된 너의 착취 / 세련된 너의 폭력’ 나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인다.

한겨레 21' 김작가의 음담악담' 원고

by 김작가 | 2007/11/29 19:31 | 생각 | 트랙백(1) | 핑백(1) | 덧글(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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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at 2007/12/16 12:38

제목 : 박제가 되어버린 노브레인
사실 노브레인이 변화의 조짐을 보인건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2집이후 사실상 밴드의 핵이었던 [차차] "차승우"가 빠지고 난후 3집부터 조선펑크로 대표되는 그들의 노래는 말랑말랑한 멜로디의 듣기좋은 곡으로 탈바꿈했다. 가사 역시 마찬가지.그래도 영화와 TV광고를 넘나들며 조선펑크를 주창하며 인디씬의 맏형 노릇을 하는 것이 일면 대견하다는 생각을 했었었다.이성우의 여전한 장난끼, 노브레인 다운 폐기와 철부지 정신, 자유분방한 펑크룩. 하지만 그들의......more

Linked at 달밤에 산들바람 : 민주노동당.. at 2007/12/12 12:18

... 요. 그래서 저희 밴드 멤버들을 부르게 된 거죠.” [이사람] “무상진료 공약 지지해 참여했어요” - 한겨레 크게 상관은 없지만 같이 읽어볼 만한 글 그래야만 했을까 - Groove Tube ... more

Commented by 카렌 at 2007/11/29 19:47
노브레인은.. 정말 너무 속상해요.
하루종일 충격.
Commented by 꿈의대화 at 2007/11/29 19:47
록스타잖습니까 록스타, 펑크락커란 이야기는 이제 그분들도 더이상
하지 않지 않습니까?
Commented by 꿈의대화 at 2007/11/29 19:47
근데 만약 펑크락커란 소리 다시 하면 공연장 찾아가서 계란 던질겁니다
Commented by 김작가 at 2007/11/29 19:55
기사에는 썼다가 지웠는데 이재오와 김문수가 한나라당에 입당한 날, 그 소식을 접한 옛동지들의 심정이 꼭 이렇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Commented at 2007/11/29 20:1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류사부 at 2007/11/29 20:31
저도 2집 비바노브레인까지 엄청 좋아했고 진짜 펑크라고 생각하는 밴드였습니다. 그리고 꼭 변화 한다고 변질이라고 보는 편은 아니지만.. 밴드가 마인드가 바뀔 수도 있긴 한데, 이번엔 정말 " 이건 아니다" 라고 느껴지더군요...
Commented by 비리 at 2007/11/29 20:51
음악과 정치를 섞고싶지 않았는데..
ㅠㅠ웬지 저는 서글픕니다.
Commented by 땅콩샌드 at 2007/11/29 21:23
글쎄요. "넌 내게 반했어."라면 모후보에게 팔아도 좋을만한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meredith at 2007/11/29 22:01
비로긴 댓글을 쓰는것에 양해를 구하면서...
하여간 요즘 대선 분위기를 보면
한국이 완전 막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펑크키드는 아니었지만, 이번 노브레인의 소식은 정말 충격이네요
Commented by daria at 2007/11/29 23:17
아 정말 저도 어제 길거리에서 이명박 유세차량에서 흘러나오는 노브레인 노래 듣고 뒷골이 띵했어요-.- 원더걸스도 텔미 안줬다는데 어찌 너네가 그럴수가 하는 생각이...
Commented by ... at 2007/11/29 23:57
차승우...그립습니다
Commented at 2007/11/29 23:5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hermes at 2007/11/30 00:21
노브레인과 MB라. 충격은 충격이네요. :(
Commented by 태엽이 at 2007/11/30 00:57
에효효효...
Commented by -_- at 2007/11/30 01:02
정말 '노브레인' 되려나보군요-_-
뭐 신나고 즐거운 노래 만드는거
뭐라 할수는 없지만 생각은 하면서 노래하시길.
Commented by 사막늑대 at 2007/11/30 09:46
노브레인은 2집을 마지막으로 그냥 락밴드가 됐죠.
그래도 작년 쌈싸페까지는 가뭄에 콩나듯 예전노래 하더니만,
올해는 완전히 안면바꾸는 모습을 본뒤 연예인이 됐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뭐~ 그래서 저런 모습에 별생각이 없습니다.
전 그래서 차차의 Moonshiners로 올인중이죠~~ ^^
Commented by TheWerTher at 2007/11/30 10:38
츨근길에 횡단보도에서 저 노래를 듣는순간.
뭐랄까요. 그냥 쉽게 표현해서 충격이었습니다.
갑자기 며칠전 모케이블에서 택시타고 인터뷰하는 프로에 나왔던 모습도 살짝 떠오르고... 그냥 슬프네요.
Commented by siesta at 2007/11/30 11:33
꿈의대화님 두번째 리플에 대박 공감! 펑크 음악의 매니아는 아니지만 펑크엔 단순히 락 음악의 한 장르 이상의 어떤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어떤 펑크 밴드가 초 울트라 보수당에 노래를 빌려준답니까? 흥
Commented by 후이짱 at 2007/11/30 11:59
나는 첫 단락에 "응? 노브레인?" 문장 읽었을때,
"응? 이명박=노브레인?" 이라고 얘기하는 건줄 알고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
Commented by 거북이도 난다 at 2007/11/30 12:31
공화당을 지지하는 클린트이스트우드를 인정할 수 있어도
극우당의 선거에 쓰이는 노브레인의 음악이라...
Commented by hio at 2007/11/30 14:35
노브레인-이명박
근데 문자로는 잘 어울리는 듯도
Commented at 2007/11/30 16:1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7/12/01 00:4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김작가 at 2007/12/01 01:01
비공개 / 그렇기 때문에, 라는 의미입니다.
Commented by 소코트라 at 2007/12/02 12:52
NB와 MB군요.
음. 부자밴드가 되었나보네요.

(김작가씨처럼)친구분들의 씁쓸함이란 꽤나 저릿하겠는걸요...
Commented by ecoli at 2007/12/11 12:02
이래서야, 서태지보다 못하지 않습니까.



Commented by reina at 2007/12/17 16:48
아. 한동안 얘기를 했더랬었죠. 변질이니 뭐니 라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약간 씁쓸한 기분이 드는건 사실이네요. 다들 그렇겠지만요;;
Commented by whynot at 2007/12/31 18:03
우연히 들르게 되었는데...오...한겨레21의 김작가님 얼음집이군요.
칼럼 잘 읽고 있습니다. 링크신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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