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가기전, 만나야할 밴드들

사회 전체가 양극화라지만 2000년대의 한국 가요계만큼 이 현상을 뚜렷이 보여주는 곳도 없다. 80-90년대에는 오버그라운드에서도 뮤지션으로 존중받을만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서태지와 아이들, 패닉, 넥스트, 전람회, 토이 등은 물론이고 삐삐 밴드 같은 팀들도 버젓이 방송 활동을 하고 CF를 찍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정확히 말하자면 기획사 시스템이 가요계를 장악한 이래 오버그라운드에서 자신의 음악으로 자기 방향을 정해 활동하는 이들은 씨가 마르다시피 했다. 그들은 모두 인디로 갔다. 그러다보니 엔터테이너는 오버그라운드, 뮤지션은 인디라는 이분법이 성립하는 게 지금의 한국 대중음악계다. 허밍 어번 스테레오처럼 외국에서는 도저히 인디로 분류될 수 없는, 명백히 주류 정서 지향의 음악이 인디로 취급받는 건 방송에 나오지 않으면 다 인디로 취급되는 한국의 이상한 현실 때문이다.

또한 2000년대는 음악 산업이 급격한 몰락과 변화를 겪고 있는 때이기도 하다. 대기업이 망하면 중소기업도 휘청거리듯, 주류 음악 시장이 하루가 다르게 망해가면서 인디 신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었다. 3000장이 손익분기점이었던 90년대와 달리, 홈레코딩 시스템의 일반화 등으로 1000장 정도만 팔아도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1000장 팔기가 힘들어졌다. 90년대의 인디 거품이 빠지면서 상대적으로 인디 음반이나 클럽을 찾는 사람들이 적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20대 중후반 여성 팬들은 그중 다수였다. 그들의 취향에 맞추려는 음악이 인디 신안에서 요 몇 년간 주류였다. 차마 글로 옮기는 게 민망한 단어들을 남발해서 이쁜 척, 귀여운 척, 착한 척 하는 음악들 말이다. 새로운 시도도 없고 패기도 없는 그런 음악들, 즉 한국 대중음악에서 인디 음악이 존재해야하는 이유를 송두리째 부정하며 자폐놀이에 빠져든 소녀취향의 음악만이 눈에 띄는 모습은 한창 피끓어야할 대학생들이 고작 공무원 시험에나 올인하는 세태만큼이나 환멸스러운 것이었다. 90년대의 열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인디도 끝났다고 했다. 불과 얼마전 애기다.

그러나 지금, 인디신은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인다. 시장이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전쟁이 나도 3일이면 평상심을 찾는게 사람의 심리다. 시장이 안 좋으면 안 좋은데로 음악만을 생각하는 이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음악을 생업이 아닌 자아실현으로 여기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음악을 하는 이들이 나오고 있다. 예전처럼 한정된 장르에 국한된 게 아니라 영미권이나 일본의 트렌드와도 동떨어진, 바로 지금 이 곳에서만 찾을 수 있는 음악들이 있다. 어느 때 보다 다양하고 장르적 완성도에 충실한 음악들이다. 이들은 인디 신의 가장 따끈따끈한 현실이다. 그리고 앞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미학이 어떤 스펙트럼을 펼칠지 보여주는 배아세포이기도 하다.

 

 

전자양

최근 두 번째 앨범 <숲>을 발매한 전자양은 한국 대중음악의 감성에 새로운 지평을 연 인물이다. 2001년 발매된 <Dencihinji>는 영국과 미국의 음악이 지배하던 기존의 인디 음악에 일본, 그 중에서도 시부야계 기타 팝의 영향을 느낄 수 있었던 앨범이었다. 그 또한 이 작품에 대해 “피시만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몽롱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와 노래와 속삭임의 경계에 머물고 있는 보컬. 그리고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안되는 가사는 ‘방구석 음악‘이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하루키와 바나나 등 일본 대중문화에 경도된 소년소녀들에게 작은 열광을 불렀다. 특히 오에 갠자부로 및 일본 현대 소설의 영향을 받은 단어 조합법은 그 후 해파리소년, 올드피시 등 그가 6년의 공백을 보이던 시기에 등장한 뮤지션들의 가사및 노래 제목, 심지어 밴드 이름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발매된 전자양의 두 번째 앨범 <숲>은 이 은둔의 뮤지션이 자폐에서 벗어나 실험적 팝의 길을 걷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운드는 전작보다 풍요롭고 다채로워졌다. 비현실과 현실, 꿈과 백일몽을 오가는 가사는 의미를 쉽게 짐작할 수 없는 메타포의 결정체다. 무엇보다 전작이 자폐적 소심함의 극치를 보였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심지어 유머까지 느껴진다. <숲>이 보여주는 최고의 미덕은 특정한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음악적 문법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익숙하되 뻔하지 않고, 새롭되 낯설지 않은 음악이다. 음악을 대중음악과 실험음악으로 거칠게 구분한다면, 전자양은 현재 한국의 대중음악안에서 가장 실험음악적 요소들을 잘 소화하고 있는 방구석의 음악 감독이다.

 

스마일스

스트로베리 TV 쇼라는 이름에서 출발, 스마일스로 개명하고 최근 데뷔 앨범을 낸 이들은 멤버 구성부터 독특하다. 여성 보컬 세명에 키보드, 기타, 드럼, 베이스 총 7명이 몸담고 있는 밴드다. 보컬 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다 노래한다. 멤버만 봐도 흔한 모던록이나 포크는 아닐 것 같은 스마일스가 들려주는 음악은 60년대 팝이다. 카펜터스와 비치 보이스, 프리 디자인과 버트 바카락 등 팝의 황금기를 구사했던 그 시대의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 데뷔 앨범 <Strawberry T.V. Show>의 앨범 커버가 말해주듯 이들이 지향하는 건 60년대의 복고에 머물지 않는다. 대신 그 때를 송두리째 옮겨서 2007년의 서울에 가져다 놓는다. 말하자면 펄 시스터즈의 보컬에 신중현 밴드의 하드 록이 아닌, 정성조 악단의 경음악을 입혔달까. 이들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존재한적 없었던 선샤인 팝, 버블검 팝 등 감미롭게 다가와 오랫동안 남아있는 순수한 팝의 시대를 재창조하는 것이다. 이런 음악을 공연장에서 소화하기 위해서는 그런 음악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운드 엔지니어가 있어야겠지만 불행히도 데뷔 이전에는 참고할만한 사운드 자료가 없던 탓에, 스마일스의 공연을 보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부천영화제의 시네록 콘서트에 이들이 참가, 좋은 음향 환경에서 공연을 벌였을 때 극장의 객석은 말 그대로 60년대의 콘서트 필름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환한 웃음이 번졌다. 여름에 비치 보이스의 음악을 들으면, 가을에 카펜터스의 음악을 들으면 공통적으로 흐뭇해지듯이 제대로 듣게 된 스마일스의 음악 또한 절로 흐뭇해진다. 왜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이 늘 60년대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스마일스의 데뷔 앨범에 담겨 있다.

 

갤럭시 익스프레스

2000년대 록의 화두는 복고다. 스트록스를 시작으로 프란즈 퍼디난드, 리버틴스, 화이트 스트라이프스 등에 의해 피워지고 지펴진 복고 사운드의 불길은 아직도 유효해서 악틱 몽키스, 에디터스, 인터폴 등 지나간 시절의 로큰롤 에너지를 지금 되살리려 하는 청춘들이 이어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런 복고적 록을 하는 팀은 없었다. 영미의 그들과 공유할 수 있는 감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LP를 뒤져 더 후와 잼의 앨범을 들으며 헤드뱅잉하던 유년 시절의 공통적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데뷔 앨범 <To The Galaxy>는 한국에서의 유의미한 복고란 무엇인지를 제시하는 앨범일 것이다. 럭스와 게토밤즈를 거친 이주현을 주축으로 결성된 이 3인조 밴드는 개러지 록으로 출발했다. 복고적 펑크라고 할까. 그러나 공연을 하고 곡을 만들어가면서 그들의 음악에는 자연스럽게 신중현 시대의 한국 록이, 그 중에서도 사이키델릭적인 요소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보컬을 제외한 다른 파트의 연주를 모두 라이브로 녹음한 <To The Galaxy>를 들어보라. 펑크와 헤비메탈, 하드록과 사이키델릭이 엄청난 분쇄력을 가진 믹서로 갈린듯 세차게 뒤셖여있다. 그러나 이 로큰롤 쥬스의 맛을 결정짓는 건 70년대 한국 록이다. 그리고 어떤 믹서로도, 설령 고속 원심분리기로 돌린다고 해도 생생히 살아있을 강력한 에너지가 꿈틀거리는 게 이들의 음악이다. 훈훈하게 생긴 기타 박종현과 구수하게 생긴 베이스 이주현이 함께 질러대는 고음역과 저음역의 외침은 세상의 우울하고 찌질한 모든 것들에게 사자후를 날리는 듯하다. ‘미인’ ‘커피한잔’ 등에서 느낄 수 있었던, 아직 언어로 정리할 수 없는 한국 록 특유의 정서가 21세기에 이토록 강력한 에너지와 함께 살아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한국의 인디 음악이 아직 성장동력을 잃어버리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음악 산업과 쇼 비즈니스의 부침과 상관없이 자아실현이자 쾌락으로서의 음악에는 아직 무궁무진한 광맥이 존재한다는 사례이기도 하다.

 

앙앙 8월호 원고 

by 김작가 | 2007/07/14 05:31 | 스토리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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