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의 혁신

파격과 권위라는 두 마리 토끼가 마치 한 몸인 것 같았다. 지난 23일 올림픽홀에서 열린 조용필 쇼케이스를 보며 든 생각이다. 미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상징하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식의 구성을 생애 첫 쇼케이스에 적용했지만 어색함이 없었다. 조용필은 10년만의 새앨범을 발표한다는 이유로 떨려했다. 후배들은 가왕앞에서 노래한다는 이유로 떨려했다. 이제 갓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이건, 말 그대로 온 국민이 아는 이름이건 예외가 없었다.

조용필의 업적을 설명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형용사와 부사가 구구절절 달라 붙은 명사가 아니다. 그가 불렀던 노래의 제목들을 열거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원고의 반은 채우고 남을 거다. '조용필이 처음에 나오는 거 봤냐?'라는 문장은 일종의 속담이 됐다. 대중음악사에서의 인기와 업적이라는 측면에서, 우리는 조용필 말고도 몇 몇 이름들을 거론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 중 그런 관용어구를 남긴 이는 없었다. 폭풍같은 인기를 몰고 왔던 이들 중에서 80년대의 조용필처럼 매년 한 두 장의 앨범을 내면서도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던 이는 없었다. 음악적으로 조용필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조용필만큼 온 세대를 포괄하면지는 못했다. 정말 오랜 시간 정상에 머물렀으며 정말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조용필의 저력이다.

부와 명예를 이룬 가수는 대부분 옛날의 성과를 욹어 먹거나 함께 나이 먹는 팬들의 감성에 맞는, 그저 그런 노래를 부르며 활동을 이어간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조용필은 자신의 음악적 욕심에만 충실한 음악을 했다. 90년대 댄스 뮤직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는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고독한 러너’로 대변되는 어덜트 컨템퍼러리 성향의, 하지만 트로트는 절대 아닌 음악으로 선회했다. 10년전에 내놨던 <오버 더 레인보우>는 ‘가요’라는 틀을 넘어 오페라와 프로그레시브 록을 시도한, 확장을 위한 사자후였다.부와 명예의 세속적 욕망에서 초월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던 것이다. 초탈과 야심의 일체화랄까. 조용필의 세계가 완성된 곳은 방송이 아니었다. 차트도 아니었다. 1987년을 끝으로 더 이상 연말 가요 대상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 향한 곳, 바로 공연장이다. 아직 제대로 된 공연 시장이나 시스템도 없던 상태에서 그는 TV를 거치지 않은, 가왕의 참모습을 보여줬다. 그처럼 정상에서 물러나 또 다른 정상의 길을 걸어간 사람또한 없었다. 그를 잊지 못하는, 그를 새로 알게 된 대중은 계속 그의 뒤를 따라왔다. 적어도 한국에서, 비내리는 날의 잠실주경기장을 4만 5천명의 사람으로 꽉 채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녀지간에 손을 잡고 와서 함께 열광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더욱 없다.

19집 <헬로>를 듣는다.  포털 사이트에 스페셜 페이지가 개설되고 앨범의 티저 영상과 신곡 ‘바운스’를 선공개했다. 아이돌의 컴백에는 익숙하지만, 가왕의 컴백으로는 익숙지 않다. 하지만 그는 이런 낯선 방식을 감행했고 또한 성공했다. 음악이 뒷받침 해줬기 때문이다. 기타 팝, 모던 록, 일렉트로니카 같은 이 시대의 장르부터 인생의 깊이가 묻어나는 노래들이 앨범을 채운다. 동시대에 적응하겠다는 시도로 그칠 수 있는 이런 구성은, 그러나 조용필의 목소리에 의해 명주로 구슬을 꿰는듯한 일관성을 획득한다. 잘 프로그램된 영화제같은 앨범이다.

이 앨범을 내기 까지 10년간, 조용필의 행보는 위대한 과거로 쌓아올린 블록버스터같은 현재였다. <헬로>는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 동시대와의 시제 일치. 조용필을 제외한 누가, 시도하고 이뤄낼 수 있을까. <헬로>를 향후 한국 대중음악이 나아가야할 비전을 제시한다 말하진 못하겠다. 하지만 한국의 어떤 뮤지션도 여지껏 이루지 못한 혁신이라 단언할 수는 있다. 혁신이란, 끊임없는 성찰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관행으로부터 벗어나고 지난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시대와 내면을 집요하게 바라볼 때 이룰 수 있는 경지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혁신을 말하는 시대, 하지만 아무나 이루지는 못한다.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경향신문 '문화와 삶'

by 김작가 | 2013/04/26 15:27 |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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